여행 에세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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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과 두려움이라는 선물
[에세이] 빼곡한 나무 사이, 틈 같은 공간에 텐트를 치고 누워 하늘을 보면 마치 나무로 지은 집에 누운 것 같다. 하루 종일 걸어온 길을 되짚어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지형을 그려본다. 능선이라면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자연에 스며들 듯 깃들어 밤을 맞이한다. 숲은 점점 짙어져 어두워지는 하늘을 닮다가 마침내 완벽한 어둠이 된다. 별이 박힌 곳은 하늘이고, 없는 곳은 숲이다. 하, 아름답다. 자연의 아름다움 : 도리없이 좋은 캠핑을 하면 뭐가 제일 좋으냐, 물으면 답이 비슷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맛있는 거 먹는 거요. 좋은 경치는 누구나 좋아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일찍이 ‘사바나 가설’을 제시했다. 사바나의 숲은 열대우림보다 채집할 식물과 고기를 얻을 사냥감이 많고 평원이라 오랜 유목에 적합하며 ..
2023.05.06 -
괜찮다는 말_프롤로그
[에세이] 밖으로 도는 일이 내가 해온 일의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집 밖이든, 일상 밖이든. 어느 겨울엔 지리산의 능선을 첫눈과 함께 걸었고 어떤 능선은 달빛에 의지해 걷기도 했다. 한여름의 설악 서북릉을 종주하다가 귀때기청봉 너덜지대에서 탈진해 죽을 뻔한 적도 있다. 해질 무렵 지나던 해남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는 고향과 집 식구들이 떠올라 차를 멈추고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울었던가.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지붕돌의 막새기와에 넋을 잃어 빛이 측면에서 드는 걸 보겠다고 두어 시간 기다리기도 했고 곰배령에서는 얼레지 보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오도카니 있었다. 통영 앞바다에서 카약을 탈 때는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고 오키나와 서쪽 해안을 자전거로 달릴 땐 고래가 심해를 유영하는 기분이 이렇겠지,..
202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