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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새를 보려 했으나
[사진 에세이] 며칠 포근하더니. 봄인가 했더니. 내일 자전거를 닦고 조여 타보려 했더니. 눈이 와버렸다. 어제는 비로 눈으로, 수시로 바뀌어 내리더니, 그래도 바닥에는 눈 흔적도 없더니.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며칠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정신이 살짝 떠 있어 하루 쉴까 했는데. 이야기 나누러 지방서 올라온다던 친구도 눈으로 약속을 미뤄 집에서 뒹굴뒹굴 라디오나 들으며 놀까 했는데. 얼마 전 가을 분위기의 논에서 봤던 새 몇 마리가 생각났다. 아니, 실은 눈이 오면 다시 보러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땐 석탄리였고, 다녀와 찾아보니 후평리에 새가 더 많다고 했다. 작업실 가려도 차 돌려 후평리에 갔다.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가는데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푸더덕푸더덕 날아가버렸다. 교차..
2024.02.22 -
다시 작업실.
[작업실 일기] 다시 작업실을 마련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 급하면 얼른 집으로 갈 수 있는 곳, 거꾸로 두어 시간 이야기를 적기 위해서 잠시 들를 수 있는 곳. 두세 번의 민망한 실패에도 다시 작업실을 꾸린 건, 이대로 접고 물러날 수 없어서가 반, 하고픈 이야기들이 조금 차올라서가 반이다. 아마 그 틈바구니 어디에 나만의 공간, 더불어 시간도 필요해서가 조금 있을 거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 끝에 어쨌든 기록을 남기고 이야기를 지어보자 다짐했고 그럴 공간이 필요했다. 지난봄부터 이따금씩 알아보다가 여름 지나면서 몇 곳으로 후보지를 줄였고, 추석이 지나면 좀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싶어 추석을 앞두고 계약을 하고 짐을 옮겼다. 그로부터 대략 보름이 지나 이제야 뭔가를 시작했다. 우이동에서 가져..
2023.10.12 -
쓸 일 많지 않아도 놓칠 수 없는
[캠핑의 물건] 칼 이야기 하는 김에 하나 더.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쓰는 칼이다. 오피넬 클래식, no 8 올리브. 알겠지만, 오피넬은 프랑스의 칼 브랜드고, 클래식은 칼날의 모양이 기본형이란 뜻이다. no 8은 칼의 크기로 칼날의 길이가 8센티미터임을 가리키고, 올리브는 손잡이 나무의 종류다. 클래식 외에 칼날의 폭이 얇은 에필레가 있고, 칼날의 크기는 액세서리용 칼을 빼도 6, 7, 8, 9, 10, 12센티미터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원래 1부터 12까지 있었으나 너무 작은 1호가 사라지고 11호는 10호 12호와 용도가 겹친다 판단해 없앴다 한다. 2호부터 12호까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 8, 10, 12호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나머지 사이즈는 손품을 좀 팔아야 한다. 손잡이 나무는 기..
2023.07.25 -
액세서리처럼 가볍게, 툴박스처럼 든든하게
[캠핑의 물건] 칼, 여러 개 있다. 아주 날카롭고 칼등이 두터워 큰 힘이 필요할 때 쓰는 헬레도 있고 적당한 힘을 가할 수 있고 가벼워 휴대성도 좋은 오피넬도 있다. 마니아처럼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아웃도어를 즐기면서 칼을 쓰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 나의 용도와 필요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더 가볍고 가지고 다니고 더 가볍게 쓸 수 있는 칼이 필요했다. 택배도 까고, 줄도 자르고, 뜯기 애매한 포장도 뜯고, 사과를 자르거나 치즈를 자르는 등 음식을 작게 나눌 때 같은. 이 정도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티 나지 않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칼. 등이라고 없겠는가. 주로 헤드랜턴이긴 하다. 가벼운 산행에 비상용으로 챙기는 헤드랜턴과 장기간의 하이킹에 가지고 가는 헤드랜턴이 있다. 더 ..
2023.07.21 -
다음 여행의 기약
[잡담] 누가 그랬다더라. 상 받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고. 여행지에서 여행을 시작할 때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별 거 없네. 이거 보러 여기까지 왔나'다. 사람 사는 데가 다르면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에 이런 델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려나'의 시기가 온다. 나의 일상과 다른 환경, 친절한 사람들이 주는 선물 같은 경험들. 다시 오면 이런저런 걸 해 봐야지, 목록이 늘어날 무렵 그런 생각이 든다. '다음 여행은 어딜 갈까.' 마냥 여유로워 여행을 밥 먹듯이 다닐 수 있는 건 아니고, 지금의 여행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쉬워 다른 여행을 그리는 게 아니다. 일생 여행을 다녀봐야 이 작은 푸른 별의 모든 표정을 볼 수는 없으니 지금의 여행이 아..
2023.07.11 -
만듦새 쓰임새 좋은 작은 컵 하나
[캠핑의 물건] 파고웍스의 사코슈가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샀다면 스노우피크의 티타늄 컵은 여행 도중에 샀다. 짐을 챙길 때 450ml 티타늄컵을 챙긴다고 챙겼다. 신치토세공항에서 짐을 '운송 모드'에서 '라이딩 모드'로 다시 싸는데 컵이 없다. 코펠을 작은 사이즈로 챙겼기 때문에 컵처럼 쓸 수 있지만 짐가방(패니어) 겉에 매달아 수시로 쓸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어차피 중간에 알파인 가스를 사야 하니까 그때 컵을 하나 사야겠다, 생각했다. 10년 전에 일본 니가타의 스노우피크 본사를 방문했을 때 티타늄컵을 선물 받았다. 초록색 아노다이징 버전이었는데, 가볍고 튼튼하고 예뻐 모든 캠핑과 많은 여행을 함께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거다. 스노우피크의 티타늄컵은 여러 버전이 있다. 싱글..
2023.07.07 -
내 몸 같은 주머니
[캠핑의 물건] 홋카이도 자전거 여행을 기념해 산 물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뒤에 소개할 스노우피크의 작은 티타늄 컵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코슈다. 사코슈는 작은 가방이다. 프랑스어 'sacoche'인데, 원래는 기병들이 안장에 두르는 가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다. 말에서 내리면 몸에 둘러야 했겠고, 적당한 크기의 수납공간과 적당한 길이의 끈이 있어야 했겠다. 아무래도 몸에 두를 땐 크로스로 매는 게 안정적이니 크로스백과 같은 뜻이라고 해도 맞겠다. 크기야 제각각이지만, 크고 무거운 물건을 담기보다는 필수품을 담을 작은 크기의 가방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내겐 사코슈가 이미 여럿 있다. 해외에 나갈 때는 여권과 지갑, 스마트폰과 이어폰, 손수건 등을 넣었다. 먼 길을 걸을 땐 아몬드와 젤리를, 자전거..
202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