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여행의 기약

2023. 7. 11. 01:04시시껄렁한 이야기_閑談

지난 여행의 흔적.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잡담]

 

 

 

누가 그랬다더라. 상 받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고.

 

여행지에서 여행을 시작할 때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별 거 없네. 이거 보러 여기까지 왔나'다. 사람 사는 데가 다르면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에 이런 델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려나'의 시기가 온다. 나의 일상과 다른 환경, 친절한 사람들이 주는 선물 같은 경험들. 다시 오면 이런저런 걸 해 봐야지, 목록이 늘어날 무렵 그런 생각이 든다. '다음 여행은 어딜 갈까.'

 

마냥 여유로워 여행을 밥 먹듯이 다닐 수 있는 건 아니고, 지금의 여행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쉬워 다른 여행을 그리는 게 아니다. 일생 여행을 다녀봐야 이 작은 푸른 별의 모든 표정을 볼 수는 없으니 지금의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에너지와 시간과 돈을 들여 다시 올 기약을 못하는 거다. 달리 올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정리하겠지만, 홋카이도는 좋았다. 섬에 머무는 여정은 물론, 거기까지 가는 여정과 돌아오는 여정 모두. 삿포로에 머무는 시간들도 좋았고. 그래서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다시 가면 이번에 엄두도 내지 못한 동부 산악지대를 돌아보고 싶다. 아마도 전 일정을 자전거로 치르진 못할 거다. 하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떠올린 다음 여행지는, 그것이 자전거 여행이라면, 토스카나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사로베츠의 광대한 습지.

 

 

아마도 이 풍경이 잔상에 남은 모양이다. 사로베츠의 습지는 숙소로 생각했던 곳이 만실이라 하여 가까운 마을까지 가는 길에 지났던 곳이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절실한 상황이었는데도 이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니 마음에 남았다. 지나고 생각하니 이런 풍경을 생각하다 떠올린 곳이 토스카나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가 상상 속에 집으로 돌아갈 때 걸었던 초원과 길, 거기가 토스카나다. 

 

내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사는 건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달라질 수 있다. 뜻이라도 세워놔야 휩쓸리지 않을 테니 말뚝 하나 박아두는 느낌으로 적어두는 거다.

 

덧붙이자면, 홋카이도에서 여행을 시작하며 '이거 보러 여기 왔나' 싶었을 땐 '우리나라 곳곳을 좀 더 둘러봐도 좋겠네' 생각을 했고, 캠핑장에서 쉬면서 오랜 생각을 끄집어냈다. 계절별로 섬진강자전거길을 둘러보자. 계절에 한 번이든 매월이든, 섬진강자전거길은 두고두고 생각나는 코스다. 서울-부산에 이르는 길이 기록 혹은 훈련의 느낌이라면 섬진강은 정말 여행의 라이딩이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7월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여름이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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