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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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한다는 것
[불놀이의 물건] 아마도 나의 두 번째 스토브. 10년 전에 샀고, 이 사진은 아직 불을 붙이기 전, 그러니까 10년 전의 모습이다. 10년 전 아웃도어 잡지사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노우피크 본사 취재가 잡혔다. 본사 투어 프로그램이었는데 일반인 참가자들과 함께 본사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야마이 토오루 대표의 배려와 메시지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애프터서비스를 담당하는 이나타 코지 씨였다.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보다가 일하시는 분이 계셔서 들어가도 되는지 여쭙고 허락을 받아 들어갔다. 재봉틀에 앉아 의자와 텐트를 수리하고 있었는데, 묻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 말이라 더욱더 좋았다. "제품을 받아보면 고객의 성격과 마음이 드러납니다. 이 의자는 고장 난 곳을 고쳐 쓴..
2023.06.07 -
숲 좋은 시절
[사진 에세이] 오랜 친구들과 공작산 숲을 잠시 걸었다. 산을 올랐다기엔 언저리를 서성였고, "오늘 좀 걸었다"기엔 가벼운 산책이었다. 두 시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숲으로 난 길을 걷고, 바람이 좋은 곳에서 잠시 쉬었고, 물이 좋은 곳에서 잠시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잠시 쉬었고, 그러다 또 잠시 걷곤 했다. 아주 귀한 나무가 있는 숲은 아니고 그 풍광이 사무칠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 또한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숲이었다. 충분히 좋았다. 하늘은 맑았고 숲은 간간히 볕이 들었다. 숲은 신록에서 벗어나 녹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에 비하면 청년기랄까. 산골짜기에서 간혹 바람이 불었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바람의 박자를 탔다. 바늘잎, 넓은잎, 작은 잎, 큰 잎, 나무 꼭대기..
2023.06.05 -
자본주의의 상상력
[사진 에세이] 자본주의는 욕망을 자극하는 기제라 했던가. 상상은 경험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했던가. 며칠 뉴욕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 자본주의의 무서움보다 시민사회의 쿨함이었다. 겉핥기 수준이지만 피부에 와닿는 건 자본주의보다 민주주의였달까. 자본주의의 위력을 느낀 건, 현장에서는 타임스퀘어의 거대한 전광판이었다. 물론 돌아와서는 헤매고 다녔던 모든 고층빌딩이 자본주의적 상상과 사고의 결과물이란 걸 깨달았지만. 그건 긴 이야기니 언젠가. 시민사회의 쿨함 혹은 위대함을 느낀 건 모든 뉴요커의 표정을 통해 느껴졌고, 광활한 센트럴파크에선 나도 그 위대함을 만끽했다. 맨해튼 중심의 거대한 공원이라니. 공원, '공공의 정원' 개념을 처음 만든 것이 뉴욕이었고, 센트럴파크였다.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것..
2023.06.04 -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사진 에세이] 처음 간 뉴욕, 맨해튼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첫 번째였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빨간색일 땐 주변을 잘 살피고 건넌다. 그냥 건넌다. 금세 적응했다. 며칠 만에 뉴요커처럼 무단횡단을 하려는데 옆에 경찰차가 서 있고 경찰들이 차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멈칫,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경찰도 자연스러웠다. '차가 오면 위험하니 건너지 마란 뜻이야. 지금은 차가 안 오잖아. 도시는 사람이 걸을 수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거지. 두 번째는 무관심.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 피해에는 기분이 나쁜 건 포함되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2023.06.03 -
아라리가 났네
[사진 에세이] 그런 순간이 있다. 낯선 세계를 날 것으로 만나 나의 세계가 변화하는. 변화는 때로 깨지는 것으로 때로는 깊어지는 것으로 또 어떤 때는 낯선 세계로 안내하는 것 등등으로 나타난다. 겨울이라 봄동을 찾아 떠난 길이었다. 새벽에 진도와 해남을 돌며 일하시는 분들을 버스로 태워 밭으로 오신다 하여 시간을 맞춰 갔다. 아직 도착하시기 전인데, 해가 솟으니 봄동이 꽃처럼 빛나더라. 그 순간만으로도 나의 여행은 이미 충분했다. 그러나. 새벽 꽃잠 베개에 묻어두고 일하러 나온 아낙들은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나이로는 할머니가 맞겠으나 그 입담과 센스, 흥과 발랄함은 아낙이란 말이 맞겠다. 마치 고된 노동을 하러 새벽부터 나온 게 아니라, 새벽에 잠이 깼는데 같이 놀 친구를 찾아 나온 것 같았다. 아침..
2023.06.02 -
여행의 꼴 2_여행을 할 거야, 라이딩과 촬영은 거들 뿐
[여행 중입니다] 여행 간담서 '여행을 할 거야'라니. 자전거 탄담서 '자전거는 거들뿐'이라니. 여행을 하면 기록을 한다. 기록은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상관없지만, 익숙한 형태가 글과 사진이다. 이번에는 영상도 재미 삼아 찍어볼 예정이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과 이런저런 여행의 모양새를 간추리는 과정이 있었듯, 여행의 내용도 덜어내는 과정이 있었다. 이를 테면. 탁 트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곧게 뻗은 자전거 길은 섬을 넘어 어디론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길.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간혹 멈춰 사진을 찍겠지. 이게 지금까지의 여행 형태다. 영상을 찍으려면 촬영기기를 어딘가에 두고 촬영하며 지나간 후 돌아와 회수를 해야 한다. 이건 여행이 아니다. 하루 80~100킬로미터를 달릴 계획인데, 최고..
2023.06.02 -
세상 싫은, 광고
[잡담] 아직 먼 일이지만, 광고가 고민이다. 수익과 상관없이 경험과 생각을 모은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다. 아직 찾는 이도 많지 않고, 내 주변에서도 모른다. 그래도 포스팅이 50개는 넘어가야 처음 들어왔을 때 잠시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여행,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하고 나를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콘텐츠는 결국 세상을 보여주는 것, 내가 보고 이해한 나의 세상을 조금 보여주는 것일 텐데, 열댓 편 가지고 '보러 오세요' 이야기하긴 낯이 뜨겁다. 광고가 고민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그렇듯, 광고 또한 일장일단이 있다.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다면 고민도 안 하겠지. 많지 않은 금액이라 해도 수익이 나오는 건 의미도 있고 바람직하기도 하다. 글을 ..
202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