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듦새 쓰임새 좋은 작은 컵 하나

2023. 7. 7. 11:45캠핑의 물건들

스노우피크 싱글월 티타늄 컵(220ml)

[캠핑의 물건]

 

 

 

파고웍스의 사코슈가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샀다면 스노우피크의 티타늄 컵은 여행 도중에 샀다.

 

짐을 챙길 때 450ml 티타늄컵을 챙긴다고 챙겼다. 신치토세공항에서 짐을 '운송 모드'에서 '라이딩 모드'로 다시 싸는데 컵이 없다. 코펠을 작은 사이즈로 챙겼기 때문에 컵처럼 쓸 수 있지만 짐가방(패니어) 겉에 매달아 수시로 쓸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어차피 중간에 알파인 가스를 사야 하니까 그때 컵을 하나 사야겠다, 생각했다.

 

싱글월 티타늄 컵. 왼쪽이 새로 산 220ml, 오른쪽은 딱 10년 된 450ml.

 

10년 전에 일본 니가타의 스노우피크 본사를 방문했을 때 티타늄컵을 선물 받았다. 초록색 아노다이징 버전이었는데, 가볍고 튼튼하고 예뻐 모든 캠핑과 많은 여행을 함께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거다.

 

스노우피크의 티타늄컵은 여러 버전이 있다. 싱글월은 홑겹이고 더블월은 이중이다. 온도를 지키기에 좋다. 사이즈도 여러 가지다. 220ml가 제일 작고 450ml가 가장 크다. 물론 스테인리스 버전도 있다. 컵 말고 잔도 있다. 손잡이가 없는. 더블월 티타늄잔은 기가 막히게 포개져 수납도 참 좋다.

 

나는 싱글월이 좋았다. 무게도 가볍지만, 사실 내게 그 정도의 무게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냥 가장 기본적인 컵이라서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블월은 약간 유난을 떠는 느낌이랄까. 물이든 커피든 맥주든 뭐 얼마나 오래 마신다고, 하는 생각. 물이나 커피는 거의 원샷에 가깝게 마시고, 커피는 온도에 따라 변하는 맛도 즐기니 굳이 더블월을 택할 필요가 없었다.

 

용량이 문제였는데, 좀 작은 컵이 필요했다. 큰 잔에는 적게 담을 수 있지만 작은 잔에는 많이 담을 수 없는 건 물론이지만, 큰 컵에 반을 따라 마시는 것과 작은 잔에 적당하게 따라 마시는 건 느낌이 좀 달랐다. 데미타세에 마셔야 할 에스프레소를 라떼 잔에 마시는 느낌이랄까. 좁은 수납공간에 작은 장비들을 이리저리 담다 보니 큰 컵은 부피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없다고 캠핑이나 여행을 못 할 건 아니어서 망설이던 차에 컵을 놓고 왔으니 살 핑계가 생긴 거지. 암튼, 샀다.

 

오전 6시. 홋카이도 리시리와 레분의 캠핑장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툭툭 털어 넣고 포트에 물 끓여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4시 전에 해가 떠 5시면 이미 텐트 안이 한증막이다. 텐트를 벗어나 나무 그늘을 찾아 시원한 바람과 함께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 자전거 탈 거리와 코스를 검색하고 확인하곤 했다.

 

티타늄 컵은 오래 써 봐서 새로운 감흥은 없었다. 다만 초록의 티타늄컵이 아노다이징 과정을 거쳐 유광 버전 같다면 오리지널은 무광버전처럼 텍스춰가 매끄럽진 않다. 개인적으로는 맨질맨질한 것보다는 살짝 거친 게 손에도 달라붙고 좋았다. 다만 땀이 많이 나면 자국이 잘 남긴 했다.

 

레이저로 포인트를 용접하는 방식은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견고한 접착력을 보인다. 험한 사용에도 10년째 그대로.

 

유명하고 고급진 아이템에 대한 욕심을 갈수록 작아진다. 호기심은 남아 있지만, 꼭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쓰임새, 나의 필요를 훌륭하게 충족시키는 아이템을 찾고픈 마음이 커진다. 아마도, 장비를 쓰는 즐거움에서 캠핑과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유로 관심이 옮겨가기 때문 아닐까. 나의 이유, 내가 자연을 즐기는 방법에 맞는 장비를 찾고 하나씩 들이는 즐거움이 무척 크다. 나의 여행, 나의 캠핑이 조금씩 꼴을 갖춰가는 과정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