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같은 주머니

2023. 7. 7. 00:06캠핑의 물건들

파고웍스의 사코슈. 스위치 M

[캠핑의 물건]

 

 

 

홋카이도 자전거 여행을 기념해 산 물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뒤에 소개할 스노우피크의 작은 티타늄 컵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코슈다. 

 

사코슈는 작은 가방이다. 프랑스어 'sacoche'인데, 원래는 기병들이 안장에 두르는 가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다. 말에서 내리면 몸에 둘러야 했겠고, 적당한 크기의 수납공간과 적당한 길이의 끈이 있어야 했겠다. 아무래도 몸에 두를 땐 크로스로 매는 게 안정적이니 크로스백과 같은 뜻이라고 해도 맞겠다. 크기야 제각각이지만, 크고 무거운 물건을 담기보다는 필수품을 담을 작은 크기의 가방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내겐 사코슈가 이미 여럿 있다. 해외에 나갈 때는 여권과 지갑, 스마트폰과 이어폰, 손수건 등을 넣었다. 먼 길을 걸을 땐 아몬드와 젤리를, 자전거를 탈 땐 지갑과 폰, 진통제와 초콜릿바 등을 챙겼다. 취재 여행을 할 땐 수첩과 펜이 들어갔고, 아이들과 산책할 땐 기저귀와 손수건이었다. 아내와 자전거를 탈 땐 두 개의 전화기와 두 개의 지갑이 들어있었다.

 

2013년 일본 출장에서 샀으니 10년이 되었는데, 긴 시간 정말 요긴하게 잘 썼다. 아래 사진의 녀석인데 살 땐 몰랐지만 '맨해튼포티지'란 브랜드도 꽤 유명하긴 하더라. 그러고 보니 맨해튼을 돌아다닐 때도 이 녀석과 함께였다. 사코슈보다는 허리춤에 차는 웨이스트백에 가깝지만 난 크로스백으로 맸으니 사코슈로 쓴 셈이다. 스트랩이 살짝 늘어난 것 말고는 어디 하나 고장 난 곳이 없어 앞으로도 영원한 현역일 듯하다.

 

맨해튼포티지의 웨이스트백 1101 앨리캣. 10년 됐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건, 아웃도어를 위한 제품이 아니었으니 방수 기능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기본 원단인 코듀라가 제법 두꺼워 어느 정도의 비는 원단 자체에서 튕겨내지만(생활방수) 좀 지나면 스며든다. 갑자기 내리는 비도 비지만, 내 몸에서 나는 땀은 밀착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흐르니 사코슈는 물론 안의 내용물까지 적시곤 했다. 어떨 때는 발수 스프레이를 뿌려 쓰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발수와 방수가 되는 사코슈가 필요했다.

 

사코슈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데, 미스테리랜치의 힙몽키도 사코슈라면 사코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필수품만 넣기에는 공간이 너무 크다. 크로스로 맬 수 있는 작은 배낭의 성격이 강하다. 제로그램의 사코슈도 샀는데, 이건 반대였다. 겉으로 보이는 크기는 적당한데, 깊이라고 해야 하나, 가방이 너무 얇았다. 볼륨이 있는 걸 넣으면 들어는 가는데 불룩해져서 보기가 싫고 매는 것도 불편했다. 아직은 적당한 용도를 찾지 못해 가끔 보면서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고 있다.

 

요는, 방수가 되고 적당한 수납공간을 가진 사코슈가 필요했다. 적당한 공간이란 대략 1리터 안팎. 2리터짜리 생수통 절반 정도의 크기라면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물건들은 어지간히 챙길 수 있으니까.

 

500ml 날진 물통이 넉넉하게 들어간다. 수납용량은 1리터 정도.

 

숙소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아웃도어 전문점을 발견했다. 수악장(秀岳莊, sugakuso)은 4층 건물 전체가 아웃도어 전문 매장이었다. 거기서 찾은 것이 파고웍스의 사코슈, 스위치다.

 

파고웍스는 잘 모르는 브랜드다. 찾아보니 일본 아웃도어 브랜드로 2011년에 시작됐다. 브랜드 이름은 '팩 앤 고(Pack and Go)'를 줄였다고 한다. 작고 가볍게 패킹해 가볍게 혹은 멀리 즐기는 요즘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는 브랜드로 보인다.

 

숍에는 당연히 다양한 브랜드, 더 다양한 디자인의 사코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파고웍스의 사코슈를 선택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방수가 되고 적당한 수납공간을 가졌기 때문.

 

원단 자체가 방수 원단이다. 코듀라 원단을 사용한 모델도 있고 방수 원단을 사용한 모델도 있었는데, 나는 방수 원단을 사용한 모델을 골랐다. 아쉬운 건, 지퍼가 방수지퍼가 아닌 점과 몸과 닿는 후면이 방수원단이 아니라는 점 정도. 방수원단으로 가방을 만들면서 지퍼와 뒷면을 놓친 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비를 오래 맞으면 재봉실과 지퍼로 물이 스며든다.

 

수납공간을 대략 1리터 정도. 크기에 따라 4가지 사이즈가 있었는데 나에게는 이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겠다 싶었다. 용도는 일상과 여행, 아웃도어 범용이다. 주머니가 불룩한 걸 싫어하고, 어지간하면 백팩을 매고 있을 것이기에 주머니에 담길 모든 것을 담는 용도라고 생각하면 대략 맞다. 수납공간이 나뉜 것도, 지퍼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주머니가 있는 것도 좋았다. 비가 올 때 쓸 수 있는 가방이 필요한 거지, 비 올 때만 쓸 가방을 원한 건 아니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쓰질 않아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살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스트랩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스트랩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가방에 작은 카라비너를 달고 스트랩을 연결해 쉽게 스트랩을 분리할 수 있다. 배낭을 맸을 때 어깨패드의 고리에 연결해 체스트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설계다. 아주 마음에 드는 설계다. 더불어 자전거를 탈 때 핸들바나 뒷랙에 걸어도 되겠다... 싶었는데 타고 있는 자전거 랙에는 연결할 수가 없다. 카라비너 주둥이가 충분히 벌어지지 않는다. 괜찮다, 방법은 찾으면 나온다.

 

지퍼의 고리가 커서 겨울에 장갑을 끼고도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는 부분도 좋고, 전면에 카라비너를 끼울 수 있도록 한 것도 장점이다. 사진 속 블랙다이아몬드의 파란색 카라비너는 별도로 사서 달았다. 구성품이 아니니 참고.

 

제품의 사용법과 구조를 설명한 태그. 백포켓 부분은 방수 원단이 아니다.

 

아마도 맨해튼포티지의 백과 이 파고웍스의 백을 주력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일상에서는 맨해튼포티지, 여행과 아웃도어에서는 파고웍스. 오랜 다양한 경험 뒤에 다시 리뷰를 쓸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크로스백이 처음의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가능성은 좀 낮지 싶다. 어쨌거나 나는 내 용도에 맞는 사코슈를 들여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