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에 제일 잘 어울리는 커피

2023. 5. 8. 17:38캠핑의 물건들

임페리아 모카포트.

[커피의 물건] 

 

 

캠핑하면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참기 어렵지.

 

커피를 좋아한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한 건 대략 10년 전이고, 캠핑을 하면서 커피를 내려마신 건 5~6년 전부터다. 처음엔 양을 조절하지 못해 드립커피가 에스프레소보다 진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 잡향이 섞인다는 걸 몰라 10분 가까이 내리기도 했다. 무슨 드립을 10분 넘게 내리냐고? 1인용 드립 시스템인 카플라노에 원두를 30그램 가까이 넣으면 물을 조금만 부어도 넘쳐서 거의 점드립을 해야 한다. 어쨌거나.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해 모카포트를 구했다. 오래전 일이다. 제일 잘 알려진 건 비알레띠BIALETTI의 모카포트인데, 처음엔 그것도 몰라 그냥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걸 샀다. 그게 임페리아IMPERIA 모카포트다. 싱글샷은 아쉬우니까 3인용으로. 사진과는 달리 처음엔 손잡이와 뚜껑이 달려 있었다. 제품이 부실해서 망가진 게 아니다. 제품은 튼튼하다. 몇 년 동안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썼으니까. 캠핑을 하면서 장작불에 모카포트를 올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한 녀석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땐 비알레띠의 모카포트가 몇 종 더 있었는데 가장 오래된 녀석을 장작불용으로 쓰기로 하고 손잡이와 뚜껑을 떼어냈다. 불에서 꺼낼 땐 두꺼운 방열장갑을 끼거나 끝이 울통불퉁한 집게로 집으면 된다.

 

모카포트가 장작불 위에 올라가는 건 사이트 세팅이 끝난 후다. 자리를 잡아 텐트를 치고 필요하다면 타프까지 친 후 장작불을 피운다. 상황에 따라서는 장작불을 먼저 피우기도 한다. 바람이 좋아 부채질 따위 필요없으면 밑불만 피우고 장작을 얹어두고 사이트를 세팅한다. 장작불이 한 차례 타오르고 난 뒤 불이 줄어들고 하얀 재가 살짝 앉으면 의자를 꺼내 들고 장작불 앞에 자리를 잡는다.

 

탱크에 물을 채운다. 선을 넘으면 넘치니 조심해야 하는데, 그냥 대충 따른다. 넘치면 넘치는 거고. 커피 깔때기에 커피를 채운다. 그라인더가 없다면 살 때 "모카포트용으로 갈아주세요" 하면 되고, 그라인더가 있다면 까슬까슬하게 비벼질 정도로 가늘게. 뭐 쓰다 보면 취향이라는 게 생기니 각자의 취향을 따르면 된다. 모카포트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탬핑을 금기시한다고 한다. 시음을 해봐도 탬핑을 한다고 더 진하거나 향이 좋진 않다고 한다. 나는 애써 탬핑을 하진 않지만 적당히 원두를 채웠을 때 살짝 넘치는 건 버리거나 덜어내지 않고 누른다. 탱크 밑바닥으로 누르면 딱 좋다. 이제 모카포트 윗부분을 결합해 조심스럽게 장작불 위에 올린다. 남은 건 기다리는 일.

 

불기운에 물이 끓는다. 펄펄 끓으며 빠져나갈 곳을 찾다가 발견한 건 탱크 바닥 가까운 깔때기 구멍. 탈출구를 찾은 물이 맹렬하게 솟아오르다가 길이 갑자기 넓어지며 구멍이 엄청 작아진다. 뭐 어때. 빠져나갈 수만 있으면 되는 걸. 구멍을 통과하면 빼곡하게 담긴 커피가루를 만난다. 처음 들어온 놈들은 커피만 적시다 끝나고 계속 들어온 놈들이 커피 성분을 추출해 끌어안고 밀려 올라온다. 다시 좁은 관을 통과하고 올라오면 목적지가 가깝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재보진 않았지만 대략 2, 3분이면 뽀글뽀글 갈색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후로 대략 30초면 추출이 끝난다. 잠깐 뭐 챙기러 가거나 한눈을 팔면 망한다.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거라면, 얼음을 꺼내 컵에 넣는 정도겠다. 얼음 생수를 사간 날은 손도끼 뒤통수로 얼음을 깨고 물병을 갈라 커다란 얼음을 컵에 넣는다. 진한 커피가 나오다가 거품이 나오기 시작하면 모카포트를 불에서 꺼낸다. 잔열이 있어 거품이 계속 올라오는데 집에서라면 찬물에 탱크 부분을 담가 거품이 올라오지 않도록 한다. 사실 놔둬도 상관없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식히는 사람, 그냥 두는 사람... 다양하다 한다.

 

그보다는 처음 커피가 고이는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커피가 흘러 고이는 부분은 달궈진 알루미늄이다. 뜨거운 금속에 커피가 담기면 맛이 거칠어진다 해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추출하는 대회에서는 간혹 커피가 추출되기 직전, 찬 물을 살짝 뿌리거나 따르는 바리스타도 있다고 한다. 흉내내 보았는데 별 차이는 없다. 차이는 있는 것 같은데 맛인지 기분인지 모르겠다.

 

모카포트 커피는 세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기도 하지만, 그냥 진하다 하기에는 뭔가 세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 따라 맛이 방향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데, 모카포트 역시 모카포트 커피만의 방향성이 있다. 드립에 비하면 진하기도 하지만 거칠다. 에스프레소에 비하면 진하지도 않으면서 투박하다. 처음 모카포트를 시작할 때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중간에 1, 2년 정도의 공백기도 있었고. 하지만 익숙해지면 세련되거나 고급지진 않은데 원초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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