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일 많지 않아도 놓칠 수 없는

2023. 7. 25. 17:58캠핑의 물건들

오피넬의 접이식 칼. 클래식, no 8, 올리브.

[캠핑의 물건]

 

 

 

칼 이야기 하는 김에 하나 더.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쓰는 칼이다. 오피넬 클래식, no 8 올리브.

 

알겠지만, 오피넬은 프랑스의 칼 브랜드고, 클래식은 칼날의 모양이 기본형이란 뜻이다. no 8은 칼의 크기로 칼날의 길이가 8센티미터임을 가리키고, 올리브는 손잡이 나무의 종류다.

 

클래식 외에 칼날의 폭이 얇은 에필레가 있고, 칼날의 크기는 액세서리용 칼을 빼도 6, 7, 8, 9, 10, 12센티미터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원래 1부터 12까지 있었으나 너무 작은 1호가 사라지고 11호는 10호 12호와 용도가 겹친다 판단해 없앴다 한다. 2호부터 12호까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 8, 10, 12호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나머지 사이즈는 손품을 좀 팔아야 한다. 손잡이 나무는 기본인 밤나무 말고도 호두나무, 올리브, 에보니, 부빈가 등이 있다. 밤나무도 칼을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냥 취향의 문제다.

 

칼날도 두 가지다. '이녹스'라 쓰인 스테인리스강과 '카본'이라 쓰인 탄소강. 탄소 함유량이 많아 단단한 탄소강이 칼날로써 매력적이겠으나, 녹에 약하다. 약간의 경도를 양보하고 관리의 편의성을 더한 게 이녹스강이다.  '스테인리스 stainless'는 녹 stain이 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녹스 inox'는 프랑스어 in-oxidiz-able, 산화되지 않는, 곧 녹이 슬지 않는다는 뜻이니 둘은 같은 말이다. 찾아보니 독일어에서는 '에델슈탈 edelstahl'이라고 한다고. 본 뜻은 고귀한 철이고 현실적으론 합금강을 가리키는데 주로 스테인리스를 뜻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스테인리스 제품에는 'SUS' 혹은 'STS' 표기를 꼭 보게 되는데 전자는 일본공업규격에서, 후자는 우리나라 공업규격에서 스테인리스를 뜻하는 재료 기호라고. 어쨌거나.

 

날을 접어 휴대할 수 있고, 펴는 게 어렵지 않으며 펴면 잠글 수 있어 안전하다. 올리브목의 부드러움과 단단함은 취향이겠고.

 

멀티툴을 제외하고 처음 들인 칼이 오피넬이었다. 가난한 캠퍼였을 때 함께 캠핑을 즐기던 세 친구는 생일마다 필요한 장비를 서로 챙겨주었다. 나의 결혼선물은 반포텍의 앤타크티카 텐트였고, 오피넬 칼은 언젠가의 생일선물이었다. 밤나무 손잡이에 12호였으니 제법 큰 칼이었다. 덩치에 맞춰 고른 사이즈였겠다. 수많은 고기와 소시지와 과일 숲에서 칼춤을 추던 첫 오피넬은 어느 캠핑 대회에서 지인이 빌려갔다가 이별하고 말았다. 나는 기억하고 상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을 꺼내긴 애매한, 뭐 그런.

 

두 번째 칼은 헬레였다. 캠핑 칼로써는 명품이라 할 헬레 칼은 지금도 캠핑박스 안에 있어 어지간한 캠핑에는 가져가게 되는데, 용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캠핑에서는. 헬레 칼은 칼날의 폭이 크고 칼등이 두꺼워 커다란 힘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 적당한데 실제 캠핑에서 그럴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수박을 쪼개는 일보단 사과나 배를 깎을 일이 많았고, 굵은 장작을 불쏘시개로 잘게 쪼개는 일은 토치 덕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보기에 칼의 사용법은 크게 둘로 나뉜다. 쉽게 표현하면 썰기와 깎기이고, 칼로 나누자면 식칼의 용법과 과도의 용법이다. 말 그대로다. 썰기는 포기김치를 써는 걸 생각하면 된다. 식칼 쥐듯 칼등을 정면으로 쥐고 쓰는 방법으로 사실상 칼의 본래 용도에 가까운 사용법이다. 깎기는 사과를 깎고 있다 치면 쉽다. 칼을 옆으로 쥐고 다른 손에 쥔 걸 다듬는 방법이다. 식칼도 과도로 쓸 수 있고, 과도 또한 써는 데 무리는 없겠으나, 일반적으로는 큰 칼은 써는 데 편하고 깎는 건 작은 칼이 쉽다.

 

야생에서는 썰 일이 훨씬 많은 게 자연스럽겠지만, 요즘 캠핑에서는 어지간한 것들은 다듬어진 것을 사므로 큰 칼보다는 작은 칼이 쓸모가 많다. 작아도 날이 서 있으면 큰 칼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무게와 부피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헬레가 있음에도 두 번째 오피넬을 들인 이유다. 더불어 오피넬 중에서도 8호를 선택한 이유다.

 

얇고 긴 날의 에필레를 고르지 않은 건 깎는 게 불편해서 반, 무서워서가 반이다. 옆으로 쥐고 쓰기에 자루가 얇아 좀 불편하기도 했고, 모양새가 왠지 회를 떠야 할 것 같아서. 손잡이목으로 올리브를 고른 건 밤나무가 기본형이라  너무 흔하기도 했고 나무의 무늬가 예뻐서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 손에 착 감기는 느낌도 좋았다. 물론 취향의 영역이다. 날은 이녹스강 즉 스테인리스로 했다.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오피넬과 함께 끝까지 고민했던 칼은 로그 log다. 로그는 브랜드인데, 브랜드 이름처럼 적당한 나뭇가지에 칼날을 고정시킨, 그러니까 오피넬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 생김새를 자랑한다. 마음은 로그 나이프에 끌렸으나 오피넬을 선택한 건 접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헬레 나이프처럼 로그 나이프 역시 칼집(쉬스)이 있지만 접을 수 있고 잠글 수 있어 안전하고 부피를 줄일 수 있어서다. 혹 칼을 많이 써야 하는 스타일로 캠핑을 즐기게 되면 헬레 나이프를 보다 많이 사용하거나 로그 나이프를 들일지도 모르겠다.

 

원형에 가까운 손잡이는 깎기에 편하고 썰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고정 링에 'No. 08'이 새겨져 있다. 무게는 50그램이 안 된다.

캠핑 장비를 사용할 때 잘 관리해 가면서 쓰는 세심함은 갖추지 못했으나 예전보다는 관리를 하는 편이다. 값이 제법 나가는 장비가 탈 나면 비용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리라는 게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대로 하려면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정비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오피넬을 써본 경험으로 오피넬을 관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쓸 때는 깨끗하게 쓴 다음엔 건조하게. 칼질을 하는데 어떻게 깨끗하게만 쓰겠는가. 최대한 음식물이나 이물질이 손잡이의 틈에 끼지 않도록 하고 묻었으면 깨끗하게 씻으면 된다. 씻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말리는 것. 잘 말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젖은 상태로 방치하면 나무가 물을 먹어 칼날을 꺼내기가 어렵고 습한 데 보관하면 곰팡이도 핀다. 날에는 녹이 슬지 않아도 손잡이에 곰팡이는 핀다. 잘 관리하자. 욕심을 부리면 날이 접히는 부분과 링 부분에 윤활유를 뿌려 보관하면 좋다. 예전엔 WD-40을 뿌렸는데 요샌 빅토리녹스 멀티툴에 바르는 윤활유를 한 방울씩 뿌려둔다. 칼을 펴고 접는 일이, 링으로 잠그고 푸는 일이 무척 부드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