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새를 보려 했으나

2024. 2. 22. 23:26여행의 순간

2024년 1월. 김포 후평리.

 

[사진 에세이]

 

 

 

며칠 포근하더니. 봄인가 했더니. 내일 자전거를 닦고 조여 타보려 했더니.

눈이 와버렸다.

 

어제는 비로 눈으로, 수시로 바뀌어 내리더니, 그래도 바닥에는 눈 흔적도 없더니.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며칠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정신이 살짝 떠 있어 하루 쉴까 했는데. 이야기 나누러 지방서 올라온다던 친구도 눈으로 약속을 미뤄 집에서 뒹굴뒹굴 라디오나 들으며 놀까 했는데.

 

얼마 전 가을 분위기의 논에서 봤던 새 몇 마리가 생각났다. 아니, 실은 눈이 오면 다시 보러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땐 석탄리였고, 다녀와 찾아보니 후평리에 새가 더 많다고 했다. 작업실 가려도 차 돌려 후평리에 갔다.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가는데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푸더덕푸더덕 날아가버렸다. 교차로 구석에 차를 두고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귀도 밝지, 그래도 50m는 넘게 남은 것 같은데, 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예민한 한두 녀석이 날갯짓을 하자 이내 모조리 비상했다.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아서 카메라 셔터에 집게손가락을 얹어 찍을 준비를 하고 다가갔다, 이놈들아.

 

사진 찍어보겠다고 다가가는데 날아가는 새들이 야속하기보다 눈밭에서 먹이 찾겠다고 부리 놀리는 녀석들 방해한 게 더 미안했다. 그래도 새들 먹이겠다고 추수도 대충 하고, 주기적으로 곡식도 뿌려주고 있으니 뭐라도 좀 먹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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