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_꽃에 이끌려

2023. 5. 29. 07:00여행의 아무런 나날

레분섬의 야생화. 출처. 공익사단법인 홋카이도 관광진흥기구.

 

[여행 중입니다]

 

 

 

레분섬에 갈 거다.

 

레분섬은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의 서북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본섬 홋카이도에서 배를 타고 좀 가면 작은 섬 리시리섬에 닿고 거기서 다시 좀 더 가면 레분섬이 나온다. 아주 작은 섬이다. 남북으로 긴데, 긴 쪽이 29킬로미터, 짧은 쪽은 8킬로미터다. 섬 한가운데 솟은 레분산의 높이는 490미터다.

 

이 사진은 홋카이도 관광진흥기구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가져 왔다. 이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의 사진이었다. 바다와 꽃이 어우러진. 바다보다 꽃이 많이 보였고, 꽃은 완만하고 푸른 초원에 은하수처럼 피어 있었다. 언젠가 가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레분섬 관광협회에서 소개한 섬의 표어는 '꽃 섬 Flower Island'다.

 

그게 6월이다. 가겠다고 다짐한 게 지난해 6월이라는 게 아니다. 오는 6월에 간다. 한 달 정도 되었나, 비행기표를 알아보다가 그냥 어느 순간 예약을 하고 결제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자연스러웠다. 명색이 여행하고 글을 쓰는 게 일인 사람이 여행을 멈춘 지 오래되었고, 글은 돈이 되는 글만 쓰고 있으니 무력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래서 세상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존재방식을 갖는다. 사회에, 세상에 이바지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생산을 하는 자는 생산으로, 웃기는 재주 있는 자 웃음으로, 가르치는 자 교육으로. 이는 동시에 자아실현의 길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자기만의 방법이 된다는 뜻이다. 자아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를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여행작가는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일 텐데, 이는 여행이라는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사유를 통해 스스로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이를 글로 적어 사회와 나누어 사회를 좀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사람을 뜻할 거다. 나는 그러고 있는가.

 

답은 명백하게 '아니오'였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나의 존재가 여행을 하고 글을 쓰던 5년 전, 1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겠다 생각하면 모르겠지만, 나는 나아가야 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얼마나 나아가는지, 어디에 이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잡설이 길었는데, 줄이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가기로 했고, 그래서 여행의 결정이 자연스러웠다는 거다. 아내의 허락이나 양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가야겠다, 생각했다.

 

다시 레분섬 이야기로 돌아오면, 바다와 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자연의 모습이지만, 사실 그 모습이 자연스럽진 않다. 바닷바람이 센 바닷가에 저렇게 야생화가 다양하게 많이 자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부러 식재한 꽃이 아니라 레분섬에 자연스레 자라는 야생화들이라 마음이 압정처럼 꽂혀버렸다.

 

 

덧.

이 여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다음 편엔 이 여행이 꼴을 갖추어가는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