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꼴 2_여행을 할 거야, 라이딩과 촬영은 거들 뿐

2023. 6. 2. 07:00여행의 아무런 나날

2021년 6월. 아야진항. 강원도고성.

 

[여행 중입니다]

 

 

 

여행 간담서 '여행을 할 거야'라니. 자전거 탄담서 '자전거는 거들뿐'이라니.

 

여행을 하면 기록을 한다. 기록은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상관없지만, 익숙한 형태가 글과 사진이다. 이번에는 영상도 재미 삼아 찍어볼 예정이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과 이런저런 여행의 모양새를 간추리는 과정이 있었듯, 여행의 내용도 덜어내는 과정이 있었다. 이를 테면.

 

탁 트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곧게 뻗은 자전거 길은 섬을 넘어 어디론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길.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간혹 멈춰 사진을 찍겠지. 이게 지금까지의 여행 형태다.

영상을 찍으려면 촬영기기를 어딘가에 두고 촬영하며 지나간 후 돌아와 회수를 해야 한다. 이건 여행이 아니다.

하루 80~100킬로미터를 달릴 계획인데, 최고 속도를 경신한다거나 거리를 늘리기 위해 줄곧 달리는 것. 그건 라이딩이지 여행이 아니다.

 

안다. 마음속에 간직한 경험과 생각은 금세 휘발된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 메모와 사진과 영상으로.

안다. 어렵게 가져온 자전거로 이 기막힌 풍경을 달리는 기분! 다 잊고 자전거만 타고 싶겠지. 하지만 남겨야 한다.

안다. 그렇다고 사진 찍고 영상 찍느라 가다 멈추고 가다 돌아오고 하면 기록은 남겠지만 기억은 남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다시 물었지. 나에게.

 

"자, 골라. 탈래 찍을래?"

 

당연히 타는 거에 집중해야지.

 

"앞만 보고 달릴 거야, 옆도 보고 달릴 거야."

 

여행은 한눈파는 맛이지. 옆길로 새보기도 할 거야. 체력이 되면.

 

"좋았어. 진행시켜."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듯,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시간당 15킬로미터 정도 간다 생각하고 천천히 구경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간다.

여행을 하는 거지.

 

이 그림은 지나고 나서도 두고두고 생각나겠지? 그럼 쉬어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촬영은 돕는 거야.

 

영상은 이번 여행의 주된 테마가 아니니, 자전거에 거치해서 간간히 찍어보는 걸로.

영상은 영혼 없이 재미로.

 

대신 시간이 남거나 남을 듯하여 넉넉히 쉴 때는 사진도 찍는다.

경치가 기가 막히면 쉬어 가는 게 예의다.

 

리시리와 레분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걷고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을 거다.

기억해, 이게 여행의 시작이었어.

 

 

글은 다녀와 삭혀야 맛이고, 이미지는 현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내 사진'이다.

와, 이쁘다, 찰칵. 이런 사진을 두고두고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거 넣어보고, 저런 거 빼 보고 하면서 자기만의 풍경을 만들어야 '내 사진'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촬영여행을 해보고 싶다. 나무처럼 한 자리에 박혀 변하는 풍경을 보고 내 풍경을 담는.

 

어쨌거나.

 

이번 여행은 '여행'에 충실하려 한다. 낯선 풍경 낯선 문화를 만나 느끼고 생각하고 간직하는 것. 나머지는 부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