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로 쌓은 탑

2023. 5. 28. 01:01여행의 순간

200X년 여름. 경주.

[사진 에세이]

 

 

출장이었지만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경주에 있는 전통시장을 취해하는 일이었고, 나는 시장도 좋아하고 경주도 좋아한다. 특히 경주의 박물관.

 

일을 마치고 돌아오지 않고 숙소를 잡아 하루를 더 묵었고, 밤엔 대릉원을 걸었고 이튿날 낮엔 박물관에서 내내 머물렀다.

 

서너 번을 돌아본 뒤 땀에 젖어 밖에서 탑을 보면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투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후다닥 건물 안으로 혹은 처마 밑으로 피했고, 나는 가만 있었다. 뛸 기운도 없었고, 이미 땀에 젖은 뒤였다. 사위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뜰에 가득했던 소리들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렸고, 듣다 보니 젖어가는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빗방울이 쌓아올린 다보탑이 눈에 들어왔다.

 

빗줄기가 굵어졌고 이내 탑이 완성됐다. 소나기 지나가고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흔들리던 탑이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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