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무덤

2023. 5. 28. 12:01여행의 순간

200X년 여름. 경주.

[사진 에세이]

 

 

앞에 소개한 '빗방울로 쌓은 탑'을 보기 전날 밤, 대릉원.

 

숙소가 대릉원 앞이었고, 저녁을 먹고 들어와 쉬려다 밤의 대릉원이 궁금하여 카메라만 들고 나갔다. 낮보단 적었지만 사람이 제법 있었고, 인적 없는 고요함을 기대했었기에 한 번 둘러보고 나가려 했다. 낮의 일정이 빡빡했었는지 피곤해서 잠시 쉬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대릉원 문을 닫는 시간이 10시였던가, 그랬는데 한 30분 정도 남았기에 한 바퀴 더 돌고 가려고 일어섰다.

 

두어 번 정도 모퉁이를 돌았을까. 엄마의 젖가슴 같은 무덤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편안하고 그리고 안전한 엄마의 젖가슴. 어렸을 땐 몰랐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기었을 때 얼마나 편안해하고 든든해하고 안심하는지를. 엄마의 젖가슴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피난처다.

 

더불어 왜 젖가슴을 두고 젖무덤이라 하는지도 저때 알았다. 솔직히 일반적인 무덤은 젖가슴이 아니라 사발 아닌가. 조선의 왕릉만 해도 엎어놓은 사발에 가깝고, 현대의 무덤은 뒤집힌 밥공기를 닮았다. 문학적 표현이려니, 했는데 신라의 왕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저 젖무덤 안의 왕들은 나라를 저리 평화롭게 하였을까. 저 무덤을 만든 이는 어떤 생각으로 이 완벽한 곡선을 다듬어냈을까.

 

두 봉분을 몇 바퀴 돌았는데 저기서 바라본 모습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기껏해야 10분 남짓 앉아 있었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도 없이 눈에 보이는 풍경만 내 안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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