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디짠 인생

2023. 5. 30. 18:11여행의 순간

2013년 2월. 서산 간월도 앞바다.

 [사진 에세이]

 

 

"굴 한 점 잡솨볼 텨?"

 

겨울이면 굴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떠올리는 편이다. 여행지를 찾다가 굴 캐는 걸 보고 싶었다. 남해의 크고 하얀 양식 굴 말고, 서해의 작고 노리끼리한 자연산 굴. 자연산이라서가 아니라 노동이 더 고될 것이라서.

 

몰랐다. 그리 새벽에 나가시는 줄. 간 날 점심으로 굴국밥을 먹고 식당 주인께 여쭈니 새벽에 나가셔서 아침이면 들어오신다고. 피곤하지만 물때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서산에서 멀지 않은 전주집으로 갔다. 부모님과 저녁을 먹고 새벽에 가야 하니 소리가 나도 신경 쓰지 마시라 했다. 전화기 알람이 울려 깨니 부엌이 환하다. 새벽부터 일하시는 할머니들 만나는데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니라고. 보온병에 마죽이 한가득이다.

 

도착하니 어르신들이 짙푸른 어둠 속에서 박스 몇 개 태워 불을 쬐고 계셨다. 기다리던 이들이 모이자 잠깐의 수다 후 바로 출발. 저 너른 뻘에 홀로 혹은 두세 명이 모여 묵묵히 굴을 캔다. 뻘까진 못 들어가고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갔다.

 

왼손엔 굴이고 오른손에 들린 도구는 '쪼새'다. 앞은 곡괭이처럼 생겨서 굴을 찍어 올리고 껍질을 까는 데 쓰고, 뒤엔 작은 갈고리 같은 게 달려 굴을 퍼낸다. 바닥의 바구니에 굴을 모은다. 옷은 예닐곱 겹이고 그래도 겨울바람을 막을 수 없어 대나무발에 비닐을 발라 허리춤에 매단다. 어깨춤이 아니라 허리춤인 이유는 허리를 펼 일이 없기 때문이다. 허리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몸동작이 왼손 팔꿈치를 다리에 기대는 거다. 무척 고된 노동이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힐긋 보시더니 굴을 한 점 주신다. 바닥에 고인 바닷물에 훌렁 헹궈서. 겁나 짜다. 짠맛이 파도처럼 지나가면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하다. 이런 느낌이 있었던가. 아마도 산에서 야생 더덕이나 도라지 뿌랭이를 씹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향 대신 굴이 입 안에 가득 차는 남해안의 굴과는 다르다.

 

물이 차는 것을 봐가면서 슬슬 뭍 쪽으로 오신다. 일을 마치면 수매하는 사내에게 넘긴다. 무게대로 돈을 받는다. 천수만이 매립되기 전엔 굴이 훨씬 많았다고 아쉬워하신다. 손주 용돈 줄 돈을 고이 접어 바지 속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맛있는 거 사 먹을 돈이라면서 왁자지껄하게 웃으신다. 

 

10년 전 서산을 다녀온 후 글쓰기의 고단함을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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