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023. 5. 27. 10:03여행의 순간

200X년 가을. 통영.

[사진 에세이]

 

 

좀 오래 전, 통영이었다.

 

좋아서 혹은 일이 있어서 거의 계절에 한 번씩 통영을 찾던 때가 있었다. 한... 몇 년 정도.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세병관이 좋아서 하릴없이 거닐며 머물러도 보고 중앙시장의 번잡함이 좋아 회 떠주시는 할머니들과 수다도 떨고.

 

아마도 일로 갔을 때다. 여행기이니 여행을 하면 되지만, 대개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사항이 있기 마련이어서 돌아보는 곳이 정해져 있다. 가야할 곳을 다 본 다음에 아무런 목적 없이 돌아다니다 통영운하 근처였나 힘들어서 잠깐 쉬는데 볕 좋은 곳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풍경이 좋다고 이방인이 개입하면 전투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법, 멀찌감치에서 풍경을 바라보다 조용히 몇 장 찍었다. 장기를 잘 몰라 어느 쪽으로 전세가 기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쟁에 임하는 장수들의 동작으로 보건데 손동작이 차분한 초나라의 승리인 것 같다. 어쩌면 진짜 승자는 팔짱 끼고 남의 전쟁 구경하고 있는 사내일지도.

'여행의 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젖무덤  (0) 2023.05.28
빗방울로 쌓은 탑  (0) 2023.05.28
다시 자전거  (0) 2023.05.25
조금씩 천천히 멈추지 않고  (0) 2023.05.05
늦봄의 단풍  (0) 202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