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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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천천히 멈추지 않고
[사진 에세이] 어제 덥더니 지난밤부터 비다. 며칠에 걸쳐 걸을 때 비는 참 난감하다. 걸을 땐 속도가 나지 않고, 쉬어도 몸이 마르지 않으며, 자고 일어나는 일이 겁나게 번거롭다. 그래도 걷다 보면 길 옆 과수원의 익지 않은 사과가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풍경 같은 걸 만난다. 볕도 비도 다 필요한 것이지. 다만 내가 어찌 할 수 없을 뿐. 그러니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익어가는 것이지. 조금씩 천천히, 멈추지 않고.
2023.05.05 -
늦봄의 단풍
[사진 에세이] 벌써 덥다. 잠시 봄에 한눈을 파는 사이, 서둘러 온 여름이 뒷덜미를 툭 건드린다. 아... 곧 여름이겠구나. 살갖에 새겨진 찌는 무더위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괜찮아. 곧 가을바람이 그 뒷목을 파고들 텐데 뭐. 저 신록의 단풍잎이 녹음을 지나 붉게 물드는 동안 땀도 흘리고 쉬면서 땀도 식히면서 또 한 번 살아가야지.
202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