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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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의 든든함과 섬세함
[캠핑의 물건] 밥그릇이다. 국그릇이기도 하고 커피잔이기도 하며 맥주잔이기도 하다. 사실은 물을 끓이거나 달걀을 지져 먹을 수도 있는, 그러니까 초소형 코펠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걱이나 국자로 쓰이기도 한다. 야외에서는 ‘원 기어 멀티 유즈’가 필수니까. 그냥 그릇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바닥에서는 ‘시에라컵’이라고 부른다. 아는 사람 다 아는 존 뮤어 John Muir 선생이 만든 미국의 시에라클럽이 활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생김새와 쓰임새가 기가 막혀 그 뒤로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시에라컵을 만든다. 서너 개의 모델을 거쳐서 스노우피크의 시에라컵에 안착했다. 없는 시절에 스노우피크가 써보고 싶어 샀는데 지금까지 아주 만족하며 쓰고 있다. 저건 ..
2023.05.08 -
조강지화 糟糠之火
[불놀이의 물건] 나의 첫 스토브. 오래전 캠핑을 시작하면서 산, 나의 20년 지기. 정확히 말하면 캠핑을 시작하기 전에 샀다. 캠핑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1박 2일 야외음주를 즐기면서 시작했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이 꽉 막히면 산에 오르곤 했는데 그때 등산화를 샀고, 어느 가을 문득 지리산이 가고 싶어 45L 배낭과 스토브, 코펠 등을 산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 2001년 즈음의 이야기다. 친구들과 다닌 캠핑에서도 주력 스토브로 썼으니 돼지 몇 마리는 이 위에서 사라졌겠다. 사진 속 이 녀석은 사실은 20년 지기는 아니다. 그 친구는 15년 정도 써서 헤드에 금이 가 가스가 샜다. 가스가 샌다기보단 화구 아닌 곳에서도 불꽃이 일었다는 말이 맞겠다. 가스야 밸브에서 잠그면 되니까. ‘화력이 세졌..
2023.05.06 -
다시 불멍
[불놀이의 물건] 내게 캠핑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운, 고마운 화로대다. 언제부턴가 나의 캠핑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많은 짐을 챙겨 옮기고 펼치는 데 힘을 쏟고 하룻밤 보낸 뒤 다시 거두어 정리하는 일이 번거로웠다.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계절이 시나브로 바뀌어가는 걸 본다든가, 긴 여행 도중에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텐트를 펼치는 것을 생각하다가 떠난 1박 캠핑은 너무 밋밋하고 동시에 너무 성가셨다. 불놀이도 마찬가지. 불멍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화로대를 피울 수 없는 곳이 아니라면 화로대를 펴고 불을 피운다. 오랜 스테디셀러인 역사각뿔 모양의 화로대가 있는데 어지간히 많이 쓰기도 했다. 역사각뿔형 화로대의 원조는 스노우피크지만 내가 가진 건 우연한 경로로 내게 온 코베아의 카피품..
2023.05.05